여호수아서 2:1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정탐꾼 두 사람을 보내며 일렀다. "가서, 몰래 그 땅을 정탐하여라. 특히 여리고 성을 잘 살펴라." 그들은 그곳을 떠나, 어느 창녀의 집에 들어가 거기에서 묵었다. 그 집에는 이름이 라합이라고 하는 창녀가 살고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어제부터 가을비가 운치 있게 내리네요. 이번 비는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만나는 단비 같죠? 늘 그런 전환점이 있어요. 어린아이 가운데는 크게 한번 앓고 쑥 성장하기도 합니다. 어떤 변곡점에 설 때마다 그 너머에 예비된 주님의 은혜를 볼 수 있다면 우리는 보다 더 성숙한 대처를 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런 영안의 은혜가 우리 가운데 있기를 빕니다.
아시다시피 우리교회는 개척교회죠. 벌써 20년이 되었으니 아직 개척교회라고 하는 것이 맞는 말인지는 잘 모르겠는데요. 아무튼 첫 시작이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음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예배의 장소도 복지관을 빌려서 시작했죠. 그 복지관이 수서에 있는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입니다. 사실 우리교회가 수서지역과 연관이 있었던 것은 전혀 아니죠. 그저 빌려주는 복지관이 그곳밖에 없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졸지에 강남에서 개척하게 된 사례가 되어버렸죠. 그렇게 우여곡절이 있지만 저는 그 태화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크나큰 은혜의 감사도 있지만 뼈저린 아픔도 함께 있는 곳이기도 하죠.
이전에도 몇 차례 언급한 바 있는데요.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은 우리나라 근대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곳입니다. 1919년 3.1 독립선언문이 낭독되었던 곳이기 때문이죠. 물론 지금의 장소인 수서동은 아니었고요. 그 당시 태화는 서울의 중심부인 종로구 인사동에 있었죠. 이곳이 얼마나 중심이었느냐 하면 1896년 세워진 서울 정중앙 표시인 표지돌이 그 앞마당에 세워질 정도였습니다. 지금은 그곳에 빌딩이 들어서 있고요. 우리 이 권사님의 회사가 바로 그 빌딩에 있죠.
사실 이곳은 처음부터 태화는 아니었습니다. 헌종의 후궁인 경빈 김 씨의 사당이었던 순화궁이 있었던 자리였죠. 그러다 을사늑약으로 나라가 찬탈된 후 이 일에 앞장섰던 이완용이 일제로부터 이곳을 선물로 받아 소유하게 되죠. 서울의 중심 중의 중심을 선물로 받을 정도로 이완용의 위세가 대단했던 거죠. 그 후로는 순화궁 뒷마당 정자에서 친일 세력들의 술판이 매일 벌어지곤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다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비바람이 치는 어느 날, 번개가 이 집 뒷마당 정자 옆의 소나무에 떨어져 불에 타는 사건이 벌어졌다고 하죠. 이 일로 거리에서는 민초들의 웅성거림이 생겼답니다. 이완용이 나라 팔아먹으니 하늘이 노해서 번개가 쳤다는 소문들이 퍼진 거죠. 이 일로 부담을 느낀 이완용은 이 순화궁을 술집에 임대하는데요. 그 집이 명월관이라는 곳이죠. 당시 명월관은 현재 동아일보사 자리에 있었어요. 그래서 그곳을 본점으로 하고 인사동에는 별도의 별관으로 꾸며 장사를 하게 되었는데 무슨 운명의 장난처럼 1919년 3월, 이곳에서 독립선언서가 낭독되었던 겁니다. 그것이 3.1 독립만세운동의 시작이었죠.
친일파 이완용의 소유인 곳에서 독립선언문이 낭독되었으니 이완용은 곤경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급하게 이 집을 처분하게 되는데요. 이때, 이 집을 구입한 사람이 미국 감리교 선교사였던 마이어스였습니다. 그녀는 이 집을 한국 최초의 복지관으로 만듭니다. 그것도 소외당하는 여성과 어린이들을 위한 복지시설로 말이죠. 이름도 태화로 짓고, 태화여성관이란 간판을 달았습니다. 이것이 우리나라 복지제도의 효시가 되죠. 이 과정에서 재미있는 일화는, 당시 장사가 잘되던 명월관이 자리를 비워주지 않아 분쟁이 있었데요. 그래서 한창 술장사를 하는 저녁 시간에 마이어스 선교사와 당시 전도부인들이 앞마당에서 찬송을 부르며 영업을 방해했데요. 그러면 술집 여인들은 영업이 끝난 새벽, 전도부인들이 자는 시간에 북과 꽹과리를 치면서 수면을 방해하며 다투었다고 하죠. 그래서 낮에는 태화깃발이, 밤에는 명월관 깃발이 문 앞에 걸렸답니다. 현재 수서동에 있는 태화복지관의 주차장 입구에 보면 양쪽에 쇠로 기둥이 세워져 있는데요. 그 기둥 위로 어울리지 않게 돌이 하나씩 얹혀있는데요. 그 돌이 당시 대문에 그 깃발을 꽂았던 석조기둥이었습니다. 결국 마지막에는 태화 쪽에서 그곳에 성조기를 꽂으면서 외교 문제로 비화될 것을 두려워한 명월관이 물러가는 것으로 끝이 났다고 하죠.
저는 이 기막힌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친일파의 앞마당에서 독립선언이 선포되고, 여성의 인권이 유린당하던 기생집에서 여성의 인권과 주권이 보장되는 자리가 된다는 사실에서 변혁의 역사를 보는 것이죠. 정말 뜻밖의 장소에서, 어쩌면 전혀 어울리지도, 아니 오히려 침해당하고 억울함을 당하던 그 자리, 더 처절하게 짓밟히던 그곳에서 전혀 다른 반전의 역사가 쓰이는 것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어요. 십자가의 역사가 그렇지 않습니까? 죽임을 당하고 가장 큰 억울함이 있는 그곳에서 생명이 나고 자유가 소생하는 것, 그것이 주님이 풀어내시는 이야기죠.
오늘 본격적인 가나안 정복이 시작됩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으로 정탐꾼을 보내죠. 그 장소가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싯딤'
그곳은 이전에 이스라엘이 이방여인들과 음행하던 곳입니다. 민수기 25장에 보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던 곳이었죠. 그런데 그곳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목숨을 거는 일이 벌어집니다. 세상의 편에 섰던 장소에서, 하나님의 약속과 꿈을 꾸며 헌신하는 자리로 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새 땅을 기대합니다. 주님의 나라와 주님의 의가 드러나는 곳을 꿈꿉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허락하신 새 땅에 들어가려면,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이 자리를 변혁의 자리로 만들어야 합니다. 나의 욕심과 나의 꿈이 충만했던 이 자리를, 하나님의 생각과 뜻이 충만한 자리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자기의 소견대로 움직이던 이 시간을, 하나님의 마음과 시선대로 움직이는 시간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아무 희망도 없고, 아무 일도 하지 않던 무기력한 내 자신을, 이제 헌신하기로 작정한, 믿기로 작정한, 변하기로 마음먹은 그 담대함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나의 자리를 변혁의 땅으로 만들어야, 나의 영혼을 변혁의 영성으로 바꿔야, 우리에게 하나님이 지시하신 새 땅이 보입니다. 옛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생각으로 서야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이 허락하신 새 땅에 들어갈 수 있어요. 오늘도 새롭게 눈을 뜨고, 새로운 마음과 생각으로 출발해야 매일 똑같은 하루하루 속에서 오늘을 새날로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지금 이 순간이 그 변혁의 시간이 되길 빕니다. 어제와 다른 마음으로 시작하는 자리, 어제의 우울함과 감정을 털고 새롭게 웃으며 출발하는 자리, 오늘을 축복의 시간으로 만들 마음으로 일어서는 자리가 되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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