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4:26 그러면 형제자매 여러분,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이 함께 모이는 자리에는, 찬송하는 사람도 있고, 가르치는 사람도 있고, 하나님의 계시를 말하는 사람도 있고, 방언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고, 통역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든 일을 남에게 덕이 되게 하십시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 주님이 주신 귀한 날입니다. 밝은 마음과 얼굴, 반가운 인사와 미소로 이 아침을 시작해 보세요.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 묵상을 하는 이 순간, 얼굴에 미소를 짓고 곁에 있는 이들에게 밝은 인사를 건네보세요. 조금 전까지 굳었던 표정과 메말랐던 마음은 뒤로하고 남은 오늘을 주님 주신 선물로 되돌리시면 좋겠습니다.
바울은 그토록 방언을 사용하는 이들에 대해 경고를 했던 이유를 오늘 설명합니다. 주님이 주신 은사는 모든 일에서 남에게 덕이 되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죠. 은사를 주신 이유가 그렇습니다. 다른 이들을 은혜롭게 만들고 유익하게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죠.
그러고 보니 은혜와 은사는 발음도 비슷하죠? 신기하게도 헬라어 단어도 [카리스]와 [카리스마]로 비슷합니다. 언듯 보기에도 같은 어원을 가진 의미의 단어임을 쉽게 알 수 있죠. 은혜와 은사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는 데는 같습니다. 그런데 2가지 의미에서 차이가 납니다. 하나는 은혜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베푸시는 선물이라면, 은사는 개인에게 베푸시는 특별한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은혜가 모든 이들에게 값없이 주신 구원의 선물인 반면, 은사는 그 은혜를 나누고 하나님 나라의 평화를 이루도록 주어진 재능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은사는 개인별로 차이가 있고 특별하죠. 다만 그 목적이 나를 위해 있기보다 남들을 유익하게 하기 위해 있는 것이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에게 있는 각자의 재능(달란트)도 비슷합니다. 대부분의 재능들은 남을 돕기 위해 있죠. 공부를 잘한다는 것도 그래요. 공부를 잘해서 자기만을 위해 지식을 쌓고 있다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대부분 지식은 남을 위해 사용되고 인류의 발전에 기여하죠. 과학기술에 특화된 재능들도 있죠. 그것 또한 나눠지고 사용되며 모든 이들이 문명의 이기를 누리도록 쓰입니다. 그렇듯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재능들은 대부분 이웃과 공동체, 사회와 모든 인류의 유익을 위해 사용되죠. 은혜가 나를 위해 있다면 은사는 그 은혜를 다른 이들과 나누며 함께 잘되도록 하는데 쓰입니다.
바울은 이를 지적하는 것이죠. 나의 특별한 재능, 주님이 주신 재능은 이웃과 더불어 하나님 나라의 평화를 위해 주어진 선물이라고 말이죠. 나의 자랑으로 삼으며 남들의 자존심을 무너뜨리고 혼란케 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좋은 머리를 주신 것도 은사입니다. 빠른 판단력과 임기응변을 주신 것은 위험한 상황이나 중요한 결정들 가운데 바른 길을 선택할 기회를 주신 것이죠. 그런데 그런 좋은 머리를 남들 등쳐먹는 데 사용하고 온갖 속임수와 거짓말로 승화시켜 버린다면 그것은 은사가 아니라 망사(罔赦:용서할 수 없는 죄)입니다.
방언 못해도 괜찮습니다. 예언 못해도 괜찮아요. 우리는 방언 못지않은, 예언 못지않은, 아니 그보다 더 깊고 큰 은사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분의 자녀로 살기로 작정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쩌면 가장 큰 선물이고 주신 은사일지도 모릅니다. 아무나 예수 믿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예수의 이름을 모르는 이들은 하나도 없어요. 그러나 그들이 다 예수를 믿지는 않습니다. 예수 믿을 결단을 한 것 자체가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은사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은사를 잘 사용해야 해요. 예수 믿는다고 우월하다 해서도 안 됩니다. 구원받았다고 우쭐할 수도 없어요. 우리는 먼저 좋은 것을 알았으니 그 좋은 것을 알려주는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우리가 먼저 길을 열었으니 다른 이들에게 편히 가도록 길을 터주는 거죠. 맛난 음식점을 알면 친구들에게 알려주지 않습니까? 좋은 일이 있으면 함께 좋도록 나누지 않습니까? 그렇게 알리고 나누고 함께 하는 일이 복음을 전하는 일이죠. 자랑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은사죠.
우리는 가장 좋은 은사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은사입니다. 모든 이들에게 자유와 행복을, 매일 기쁨과 감사를, 언제나 건강함과 영적 권세를 함께 누리길 바라며 꿈꾸는 그리스도인이 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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