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묵상하는말씀/고린도전서묵상

고린도전서 106 - 질타보다 권면하세요.

반응형

고린도전서 14:20~22   형제자매 여러분, 생각하는 데는 아이가 되지 마십시오. 악에는 아이가 되고, 생각하는 데는 어른이 되십시오. 율법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방언을 하는 사람의 혀와 딴 나라 사람의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은 나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방언은 신자들에게 주는 표징이 아니라 불신자들에게 주는 표징이고, 예언은 불신자들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신자들에게 주는 것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어제부터 계속 비가 오네요. 시인 이해인 수녀의 시 가운데 [제비꽃 연가]라는 시가 있습니다. 그 시의 마지막에 이런 구절이 나오죠.

 

"비 오는 날에도 노래를 멈추지 않는 작은 시인이 되겠습니다."

 

비가 오고 바람 불고, 거센 눈보라가 닥쳐도 시간이 멈추지 않듯 묵묵히 나의 길을 걷는 모든 분들을 축복합니다. 때론 꺾이고 때론 뒷걸음질 칠 때가 있을지라도 결국엔 저 높은 곳을 향해 걸음을 멈추지 않는 우리 모두 되기를 빕니다.

 

바울은 방언을 하는 이들을 향해 어린아이처럼 굴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이는 방언을 마치 자신의 전유물인양 자랑거리로 삼고 있는 이들의 행동이 유치하다는 뜻이죠. 어른스럽게, 그러니까 조금 더 성숙한 자가 되기를 부탁하죠. 그런데 그다음 구약을 인용하는 데 이르러서는 방언으로 자신을 뽐내거나, 혹은 공동체의 위화감을 조성하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고 위험한 일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지금까지는 방언을 잘못 사용하는 일이 죄라거나 누군가를 해치는 위험성을 지닌 것으로 설명하지는 않았죠. 그런데 오늘은 다릅니다.

 

그것을 이해하려면 바울이 인용한 이사야서 28장의 이야기를 이해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인용한 구절은 11절과 12절을 합쳐 놓은 것인데요. 주님께서 방언이나 딴 나라 언어로 말씀하실 것이라는 뜻은 다른 나라, 그러니까 앗시리아를 통해서 유대민족을 다스리게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그 이유는 유대 백성들이 교만하고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탓이죠. 12절은 그럼에도 유대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는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그러니까 이 인용은 방언을 가지고 자랑을 하고 위화감을 조성하는 일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일이고, 더 나아가 다른 나라를 통해 식민지가 되게 할 벌이 주어질 정도의 죄가 된다는 뜻입니다.

 

마치 이런 예를 들면 될까요? 보통 외국어를 자랑삼아 쓰는 사람들이 있죠. 괜히 자기가 아는 말을 한국말과 섞어서 쓰는 사람 말이죠. 우스개 소리지만 외국에서 살던 사람보다 한몇 달 다녀온 사람들의 혀가 더 꼬부라져 있다는 말도 있죠. 그런 사람에게 그냥 외국 사람들과만 말하도록 만들어 버리면 어떨까요? 한국말 하나 못하고 그저 외국말만 하도록 말입니다. 어쩌면 그게 형벌일지도 모르겠네요. 마치 하나님의 조치가 그런 것처럼 보이죠. 

 

이어지는 말씀도 해석이 좀 필요해요. '방언은 신자들에게 주는 표징이 아니라 불신자들에게 주는 표징'이라는 말은 좋은 의미가 아닙니다. 방언은 불신자에게 쓰고, 예언은 신자에게 사용하라는 권면이 아닙니다. 이 말은 방언을 불신자들이 들으면 다 미쳤다고 도망치고 오히려 복음을 더 멀리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가끔 그런 말을 듣죠. 예수님을 믿고자 하는 마음으로 처음 교회의 문을 열었는데 거기 모인 사람들의 분위기가 너무 낯설고 심지어 무섭기까지 해서 도망쳐 나왔다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물론 이는 단편적인 예일 뿐이죠. 그러나 이런 에피소드를 통해서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할 것이 있어요. 우리는 하늘의 언어를 세상의 언어로 바꾸어 선포하는 사람들이라고 말이죠. 이해하기 어려운 언어를 알기 쉽게 말해주는 사람이라고요. 그것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입니다. 이미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 언어의 통역사라는 묵상을 한 바 있죠? 그리스도인의 실력, 믿음의 분량은 그 통번역의 실력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어요. 많은 사람들이 남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저도 그랬어요. 목회하는 오랫동안 뭔가를 가르치고 사람을 고치려고 했음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잘 가르치는 것이 능력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 누구든지 사람이 누구를 가르칠 그런 존재는 아니더라고요. 누구를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도 없고, 더 나아가 누구를 질타하거나 혼내거나 정죄할 수 있는 사람도 없더라고요. 복음이 있는 사람은 더 특별히 말이죠. 다만 그저 하나님의 마음, 아픈 손가락인 자식을 사랑하는 그 마음, 이제나 저제나 인내하고 기다리며, 늘 격려와 응원과 사랑을 아끼지 않으시는 그 마음을 전하는 것 이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더라고요. 

 

질타보다 권면하세요. 가르치기보다 응원하세요. 우리는 다 하나님의 사람이어서 스스로 변화되고 자라고 성장하는 DNA를 가졌습니다. 다만 사랑받지 못해서, 다만 격려받지 못해서, 다만 내편이 돼주는 이가 없어서 그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고 깨어나지 못할 뿐입니다. 문은 그 사람만이 엽니다. 스스로 열어요. 주님도 직접 하시지 않고 그 문이 열리기까지 기다리시죠. 그러니 남이 열 수도 없어요. 그저 사랑할 뿐입니다. 그저 응원할 뿐이고요. 그저 격려할 뿐이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입니다. 

 

내 독설로 사람 안 바뀝니다. 내 설교로 사람 안 변해요. 내 기준으로 그 문 열리지 않습니다. 그저 토닥여 주세요. 그저 응원하고 격려하고 권면하세요. 봐주고 기다리고 기대하고 소망하세요. 웃어주고 아껴주고 사랑하세요. 그것이 가장 큰 가르침이고 선물입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