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4:14~19 내가 방언으로 기도하면 내 영은 기도하지만, 내 마음은 아무런 열매를 얻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나는 영으로 기도하고, 또 깨친 마음으로도 기도하겠습니다. 나는 영으로 찬미하고, 또 깨친 마음으로도 찬미하겠습니다. 그렇지 않고, 그대가 영으로만 감사를 드리면, 갓 믿기 시작한 사람은, 그것이 무슨 뜻인지를 알아듣지 못하므로, 어떻게 그 감사 기도에 "아멘" 하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대가 훌륭하게 감사 기도를 드린다고 해도, 다른 사람에게는 덕이 되지 않습니다. 나는 여러분 가운데 누구보다도 더 많이 방언을 말할 수 있음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러나 나는, 방언으로 만 마디 말을 하기보다도,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하여 나의 깨친 마음으로 교회에서 다섯 마디 말을 하기를 원합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도 웃는 얼굴로 아침을 여는 우리 모두에게, 감사와 기쁨의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눈에 보이고 발견되는 기적이 일어나는 하루이길 빕니다.
오늘 본문에도 어김없이 방언에 대한 강한 어조의 지적이 계속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조금 더 선명하죠. 공동체 내에서 기도할 때 방언으로 기도하는 이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확실해 보입니다. 공동체 내 이제 갓 믿기 시작한 초신자들이 아멘으로 화답하는 것조차 할 수 없게 만드는 일들이 있었던 거죠. 자신의 영적 능력을 자랑하고자 그랬는지, 혹은 성령에 휩싸여 그랬는지 알 길은 없습니다. 다만 아무리 성령에 사로잡혀 감동으로 방언을 한다고 해도 공동체 내에서만큼은 서로에게 덕이 되는 일을 하라고 바울은 권면하죠.
이미 수차례 묵상으로 나눴던 이야기의 반복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공동체 내에서 덕을 세우지 못하면 은사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의미죠. 왜냐하면 은사가 나를 통해 남을 세우고 격려하고 용기를 주는 사랑의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이미 우리는 묵상을 나눴고 또 깊이 인지하고 있죠. 그래서 더 이상 나눌 말씀이 없습니다. 다만 다른 의미에서 오늘 본문에 다가가고자 해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나의 영적인 능력, 깨달음을 어떻게 은사화 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받는 것이 많습니다. 돌아보면 은혜였던 일들이 하나 둘이 아니죠. 찾아보면 감사한 순간들이 차고 넘칩니다. 말씀으로 주시는 깨달음도 있고, 삶에서 누리는 복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나만이 아는 것이죠. 내가 느끼고 인정하는 일들입니다. 내 마음에 간직되고, 내 생각에 자리하는 일들이죠. 그런데 그 은혜가 내 것이 되는 방법은 따로 있습니다. 내게 주신 감사가 지속되는 방법, 내게 주신 복이 열매를 맺는 방법이 따로 있어요. 그것은 나눠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머리에는 수많은 생각이 떠돌아다닙니다. 머리로만 보면 하늘도 날아다닐 만큼 모든 일들을 할 수 있죠. 그런데 우리는 그 생각들을 모두 현실화하지는 못합니다. 생각대로만 된다면야 뭔들 부럽겠습니까? 오히려 생각과 현실의 괴리가 크면 클수록 낙심과 낙담만 쌓일 뿐이죠. 해서 생각을 현실화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 방법이 바로 그 생각을 나누는 일입니다. 나눈다는 것이 분배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때론 글로 표현하는 것이죠. 계획서에 적는 것입니다. 아마도 생각은 100가지가 넘어도 글로 표현하거나 말로 정리를 한다면 10가지로 축소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말한 것들만 내 현실이 되고, 그렇게 적고 계획한 것들만 내 몸으로 실행하는 일들이 됩니다.
말씀도 그렇습니다. 말씀을 읽고 깨달음을 얻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렇구나' 아무리 무릎을 쳐도 그 깨달음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내 생각 속에서 금세 사라지죠. 그 깨달음이 나의 삶이 되기 위해서는 입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말하고 나눠야 합니다. 아무리 듣고 생각했어도 내 입으로 말하고 누군가에게 증거 하지 않는다면 그 생각은 성취되지도 실현되지도, 아니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흐지부지 사라집니다. 감사는 어떨까요? 생각으로만 감사합니다. 내 속으로만 감사를 간직해요. 마음에 간직한다는 말을 우리는 너무 믿어요. 좋은 말 같지만 우리 마음에 담기는 감사는 별로 없습니다. 진짜 감사가 기억되는 것은 내가 얼마나 입으로 표현하고 전하고 말했느냐에 달렸습니다. 아무리 마음으로 사랑해도 표현되지 않은 사랑은 통용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응원해도 말하지 않으면 누가 응원했는지 아무도 몰라요. 그 응원은 결코 격려로 작용하지 못합니다.
누군가의 기도제목을 보고 '속으로 기도해야지' 해보세요.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몰래 기도해야지 생각할 수 있죠. 드러내지 않고 뒤에서 묵묵히 기도하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은 겸손입니다. 그런데 실상은 대부분 잊어버립니다. 안 해요. 물론 그런 겸손한 분들이 계실 것이라고 믿어요. 그런데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라면 모를까 아무 말 없이 뒤에서 묵묵히 기도하는 일은 어렵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약속하는 시인이라도 해야, 할까 말까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렇게 말로 표현하고 글로 적고, 주위 사람들에게 선포하고 다짐해야 그래야 조금이라도 실천하고 행동하는 것이 우리죠.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 간직만 하는데 머문다면 그것은 이내 사라집니다. 나눠야 하고 써야 풍성해지는 것이 은사죠. 생각으로만 기도하지 말고, 깨친 마음, 곧 지성으로, 그러니까 말로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격려하고 응원하고 토닥여주세요. 그렇게 나눠야 우리의 기도는 나의 것이 됩니다. 생각으로 만 마디 말을 하는 것보다 그 생각을 단 다섯 마디라도 나누고 선포해야 내 것이 됩니다. 생각했다면 나누세요. 그래야 그 생각이 내 현실이 됩니다. 깨달았다면 선포하세요. 그래야 그 깨달음이 나를 붙듭니다. 감사하다면, 기쁘다면, 좋다면, 나누고 표현하세요. 예배하고 찬양하세요. 그래야 그 감사가 지속되고, 기쁜 일들이 내 삶에 흐릅니다. 그렇게 나의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오늘도 내 영의 생각을 삶의 자리에서 선포하며 나의 것으로 만드는 여러분 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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