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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고린도전서묵상

고린도전서 102 - 표현이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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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4:4~5   방언으로 말하는 사람은 자기에게만 덕을 끼치고, 예언하는 사람은 교회에 덕을 끼칩니다. 여러분이 모두 방언으로 말할 수 있기를 내가 바랍니다마는, 그보다도 예언할 수 있기를 더 바랍니다. 방언을 누가 통역하여 교회에 덕을 끼치게 해주지 않으면, 방언으로 말하는 사람보다, 예언하는 사람이 더 훌륭합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쏜살같이 일주일이 갔습니다. 후회 없이 웃으며 일주일을 마무리하는 금요일 되시길 빕니다.

 

바울은 방언과 예언을 대비시키며 우리에게 사랑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무언가 두 가지를 놓고 비교하면, 우리는 늘 승부를 내길 바라죠. 어떤 것이 1등인지, 어떤 것이 더 나은지를 가리려고 합니다.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승부란 둘 다 잘한다는 뜻이죠. 그런데 1등이 정해지고 나면 우리는 2등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단 1표 차이여도, 우리는 1등에게 모든 것을 넘겨버리죠. 

 

오늘 같은 본문에서도 그런 현상이 드러납니다. 방언과 예언을 비교하며 바울은 예언이 더 낫다고 주장한다 생각하죠. 그래서 방언은 또 하찮은 것이라고 여기려 듭니다. 그런 현상은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는 장면을 받아들일 때도 일어납니다.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한 율법 교사가 묻죠.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계명은 무엇이냐고 말이죠. 그때 예수님은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둘째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대답하십니다. 이를 두고 우리는 또 이웃 사랑보다 하나님 사랑이 먼저라고 받아들이죠. 물론 예수님의 대답은 동시다발적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 사랑이 하나라는 뜻이죠.

 

지금 바울은 방언을 예언보다 못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뭐랄까요? 기능이 다르다고 해야 할까요? 마치 생각하는 것과 말하는 것의 차이라고 해야 할까요? 생각 없이 말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우리는 잘 알죠. 또한 아무리 깊은 생각을 해도 표현하지 않으면 아무 유익이 없는 것도 잘 압니다. 믿음 없이 소망을 가질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소망이 없는 자에게 믿음이 있을 리가 없죠. 

 

그럼에도 바울이 예언을 강조하는 이유는 지금 이 편지를 읽고 있는 이들, 그들의 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초창기 초대교회는 사랑이 있었습니다. 주인이건 종이건, 가족이건 이웃이건, 그들은 늘 사랑으로 대했습니다.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았어요. 신분을 따지는 사회적인 체면이나 제도적인 규율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생명을 존중하고 모든 이들을 하나님의 창조물인 형제자매로 받아들였죠. 그저 닥치고 사랑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사랑은 서로 떡을 나누고, 소유를 팔아 필요한 이들에게 주는 형태로 표현되었던 거죠. 그런 모든 표현을 사람들은 사랑으로 받아들였고, 그 사랑에 부러운 마음으로 호감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런 공동체에 균열이 시작되었습니다. 뭔가를 따지는 이들이 등장한 거죠. 이래야 맞고, 저래야 옳고를 따지는 지도자들이 등장했습니다. 유대적 전통을 따라야 참된 복음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생겼고, 사랑이라는 것에도 신분적인 차이가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나타났습니다. 그러면서 점차 그들은 표현보다는 관념에 몰두하기 시작했어요. 생각이 중요하다, 개념이 중요하다, 철학이 중요하다를 강조했습니다. 이를 영적인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으로 받아들이며 흘러갔죠. 

 

네, 영적인 것 중요합니다. 개념과 철학도 중요하죠. 그런데 그런 것들이 표현이 되지 않습니다. 생명을 존중하고 이웃이 가족이라는 생각이 있지만 그러나 표현을 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어려운 이웃을 보며 가엽고 불쌍하다 생각하지만 아무도 손을 내밀지는 않습니다. 그러면서 그런 생각만으로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자위하죠. 여기에 바울은 충고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이죠.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 이런 말을 합니다.

 

"다 아시죠?"

 

조용히 기도하거나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지 않고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내 마음을 다 아실 거라고요. 기도하지 않아도 다 아실 거라고요. 물론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내 중심을 다 아시죠. 그것을 다 아셔서 그렇게 다 아신다고 퉁치는 내가 하나님을 무시하고 기도 시간이 귀찮고 시간 내는 것이 아까우며 하나님께 별생각이 없다는 것도 아십니다. 
 

안다면 표현하세요. 옳다면 표현하세요. 생각했다면 표현하세요. 표현이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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