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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고린도전서묵상

고린도전서 100 - 닥치고 사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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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3:12~13   지금은 우리가 거울로 영상을 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마는,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여 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부분밖에 알지 못하지마는, 그때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아신 것과 같이, 내가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가운데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새날이 밝았습니다. 혹시 어제 주무실 때 오늘이 오지 않을 것을 걱정하신 분이 계실까요? 아마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아무도 그런 의심은 하지 않으셨겠죠? 어쩌면 그것이 우리의 믿음인지도 모릅니다. 이 아침에도 그 믿음이 작용하면 좋겠어요. 오늘 아침, 새 하늘이 열린 것처럼 나에게 주어진 하루도 새로운 해와 새로운 공기와 새로운 시간들이 환하게 열릴 것이라고 말이죠. 그 믿음대로 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맹인모상(盲人摸象)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죠. 우리 말로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입니다. 아마도 이 사자성어의 우화를 대부분 아실 거예요. 옛날 인도의 어떤 스승이 제자들에게 '진리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가르치면서 이 말을 했다고 합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이들이 코끼리를 만지며 자기가 경험한 코끼리를 묘사했는데요. 코끼리 다리를 만진 이는 코끼리가 굵은 기둥 같다고 하고, 몸통을 만진 이는 거대한 장독 같다고 하고, 코를 만진 이는 밧줄 같다고 했다는 거죠. 이를 두고 스승은, 진리를 아는 것도 이와 똑같다고 했답니다. 마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아는 것이 전부인양 떠든다는 거죠. 그래서 진리는 내가 아는 것을 뛰어넘어 나와 다른 사람들과의 호흡과 공유 속에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바울은 믿음, 소망, 사랑이 한 가지라고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왜 이 3가지가 하나일까요? 좀 유치한 말이지만, 오늘 새벽 일어나 양치를 하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매일 양치를 왜 할까? 싶었어요. 바보 같죠? 누구나 아침에 양치로 시작하잖아요? 양치를 해야 개운하고 냄새도 안 나고 청결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양치 안 한다고 당장 죽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못 사는 것도 아니잖아요? 어린아이들은 양치하기 정말 싫어하죠. 그런데도 굳이 양치를 강요하고 시키는 이유는 뭘까? 싶더라고요. 그리고 곧 떠오른 합당한 이유는 이것이었어요. 

 

'그래야 이가 썩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양치만큼 믿음을 가진 행동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보이지 않는 미래를 위해서 시간과 열정을 투자하는 믿음의 행동이라고 말이죠. 양치뿐만이 아니죠? 우리의 일상에는 믿음을 가지고 하는 행동들이 대부분입니다. 운동도 그래요. 지금 당장 보이지 않는 미래의 가치에 소망을 두고 하는 행동이죠. 그렇게 믿음과 소망은 하나입니다. 

 

이것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 성경구절이 있어요. 히브리서의 말씀이죠.

 

히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는 믿음은, 그가 자기를 찾는 자에게 반드시 상을 주시는 분이라는 소망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소망이 없이는 믿음도 없고, 믿음이 없이는 소망을 이룰 수도 없는 것이죠.

 

그런데 오늘 본문의 초점은 그 중요한 믿음도, 소망도 아닙니다.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하죠.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의문이 가시지 않는 것이 있었어요. 그것은 3가지가 하나이고 중요하다면서 왜 굳이 그중에 제일을 꼽았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그리고 사랑이 무엇이관데 강조하는 것일까? 싶었어요. 그리고 최근에야 이 말씀을 어렴풋이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둔한 비유이지만 저는 이 3가지, 믿음, 소망, 사랑을 이렇게 설명하고 싶습니다. 이는 마치 과거와 미래와 현재라고 말이죠. 믿음이 과거 시제라면 소망은 미래입니다. 믿음의 결과가 미래에 나타나죠. 소망의 열매는 믿음으로 맺어집니다. 심은 대로 거두고 뿌린 대로 열매를 맺죠. 여기에 사랑이 있습니다. 

 

꿈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있어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 행동해야 합니다. 그것이 공부든, 일이든, 사업이든, 노동이든, 닥치고 행동해야 하죠. 바울은 그것을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나에게 소망이 있어요. 그리고 그 소망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에서 시작되죠. 히브리 기자의 선포대로 반드시 상을 주실 그날을 소망하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역사하심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닥치고 사랑해야 해요. 그저 오늘은 사랑하며 사는 겁니다. 오늘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사는 거죠. 과거에 얽매일 필요도 없고,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오늘, 주어진 시간을 사랑하고, 놓인 환경을 사랑하며 사는 겁니다. 그 사랑이 믿음을 굳건히 만들고, 그 사랑이 소망의 길을 만들어요. 마치 오늘이 과거를 바라 잡고 미래를 설계하는 것처럼 말이죠.

 

닥치고 사랑하세요. 좀 거친 언사입니다만 믿음과 소망을 이루려면 오늘 사랑하며 사세요. 요한복음에 이런 구절이 있죠?

 

요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

 

오늘 사랑함이 믿음의 증거이고 소망의 징검다리이기에 사랑이 그중의 제일 되는 것입니다. 오늘이 과거를 넘어 미래로 가는 길목이기에 사랑이 모든 것을 증명하게 되는 것이죠.

 

오늘을 사랑으로 채우며 믿음과 소망을 굳건하게 쌓는 여러분들을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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