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우리는 예레미야의 통곡을 들었습니다.
그 통곡은 사역자의 숙명과도 같은 통곡이지요.
좋은 일 하다가 욕을 먹습니다.
도우려 최선을 다하는데 감사는커녕 오히려 핀잔을 듣고, 곡해를 당하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은 인간들을 깨우는 일이었습니다.
사람답게 사는 길,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는 길에 대한 외침이었고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대한 촉구를 하셨습니다.
그것이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고,
그것이 곧 우리가 영생을 얻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버렸습니다.
아니 그를 죽였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일이 뭘까요?
아마도 좋은 일 하고도 욕먹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차라리 나쁜 짓하다 욕먹으면 억울하지는 않죠.
그런데 도와주려다 욕먹고, 섬기려다 버림받는 일이 생기면 억울하죠.
더 나아가 더 이상 그런 일 하지 않고 싶어 집니다.
우리가 진리를 추구하는데 머뭇거리게 되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진리를 따라도 알아주는 이 없고, 옳은 길을 가도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오해를 받고, 박해를 받고, 미움을 받습니다.
그러면 차라리 그만두고 싶어 지죠.
그런 차원에서 예레미야의 어제 한탄은 이해가 갑니다.
오늘 본문은 미래에 대한 예언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에게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에 대해 말씀하시죠.
그들은 원수의 손에 넘겨질 것이고, 나라를 잃게 될 것임을 예언하십니다.
우리가 알듯, 포로가 되어 겪게 되는 고난의 시간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왜 예레미야에게 하실까요?
그것은 지금 예레미야의 사역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계신지도 모르겠어요.
유다 백성들에게 회개를 선포하고, 개혁을 요구하는 사역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려주시는 것이죠.
개혁하지 않으면, 돌아서지 않으면 닥칠 미래가 뻔하다는 뜻입니다.
제각기 자신의 이로움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긍휼과 나눔을 실천하기는 어렵습니다.
더 높은 곳을 향하고, 더 많은 것을 얻으려는 풍조 속에 낮은 곳, 겸손을 갖는다는 것은 미련해 보입니다.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사랑은 사치스러워 보이죠.
그런 조롱이 만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동에 자신감을 잃어버리죠.
이것이 맞나 싶기도 하고, 이래도 되나 싶기도 하죠.
어떤 책을 보니 제목이 그렇더라고요.
[이렇게 살아도 되나]
그 책은 그리스도의 사역자로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책이었습니다.
가치관이 다른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 삶을 사는 것에 대한 어려움이 담긴 제목인데요.
그래서 그리스도의 길이 어려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지도 몰라요.
“너의 길이 옳다”
지난 수요일, 같은 지역교회에서 우리 교회에 대한 브리핑을 했습니다.
그 교회에서 내년에 지역을 섬기는 계획을 가지고 있어서 다림 사역에 대한 철학을 알고 싶다는 요청을 받았기 때문이죠.
제가 지역에 대해 알려드리고, 그동안의 사역에 대한 내용을 가르쳐드리려고 갔는데요.
오히려 제가 위로를 받고 왔습니다.
왜 제게 브리핑을 요청했느냐고 물었더니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다림 사역의 길이 옳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그 말이 참 위로가 되었어요.
그동안에는 다림 사역이 어리석고, 잇속이 없고, 허튼짓이라는 눈총이 많았거든요.
크지도 않은 주제에 누구를 돕고, 많지도 않은 주제에 무슨 나눔이냐는 눈총 말이죠.
자기 잘 되는 것에 관심 두지 않고 남이 잘 되는 것에 대해 일하는 것은 틀렸다는 눈총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를 보면서 “그 길이 옳다”는 말은 너무 큰 격려 같았어요.
우리는 서로 그런 격려가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위로가 필요해요.
외로운 진리의 길에 그나마 함께하며 서로 격려하는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우리는 서로 격려하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너의 사역이 틀리지 않았다고, 너의 걷는 길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서로 격려하면 좋겠어요.
우리 밖에는 그런 격려를 할 수 없으니까요.
조금 달라도, 조금 빗겨나가도, 우리 밖에는 서로 위로가 되어줄 사람이 없으니까요.
그런 교회였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버텨주는 세 겹줄의 능력이 있는 우리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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