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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예레미야묵상

예레미야묵상28- 주님이 주신 복도 붙잡아야 보배입니다. 예레미야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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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전도사로 섬기던 교회에
서로 좋은 관계로 지내던 권사님이 계셨습니다.
교회에서는 성가대 대장으로,
사회에서는 전문직 회사의 대표로 일하는
멋진 중년 신사였죠.
젊은 시절 제게는,
중년 신사의 넉넉한 미소와
너그러운 마음들은 늘 부러움의 대상이었어요.
‘나도 저렇게 아름답게 늙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거든요.
그 권사님은 제게 그런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교회에서도 어린 저를
동생처럼, 혹은 조카처럼 챙겨주시고,
또 목회자라고 대우해 주시고 하셨습니다.
한번은, 자신의 집에 초대하면서
자신의 동생을 위해 기도를 부탁하시더라고요.
그때, 제가 뭐라고 ‘어린 전도사에게 이런 부탁을 하시나’ 싶었습니다.
그래도 목회자 대접을 받는 것 같아서 뿌듯했던 기억도 나요.

그분의 집은 너무 좋았습니다.
복층 아파트를 처음 구경했거든요.
집 구경에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권사님은 먼저 동생을 소개하겠다고 방으로 저를 이끌었습니다.
그 방을 여는 순간,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방에는 젊은 청년 하나가 누워있었는데요.
주변에는 각종 링거가 매달려 있었습니다.
더 놀랐던 것은 그분이 눈을 뜨고 있었지만
초점이 없었다는 거예요.
이야기를 듣고 보니 전신 마비 상태로 누워있는 것이라더군요.

권사님의 동생은 우리나라에서 최고라는 대학을 졸업하고,
청년들이 제일 들어가고 싶어 하는 최고의 직장에 취업했답니다.
학교 다닐 때부터 천재 소리를 들었데요.
그런데 직장 연수를 받고 퇴소하기 전날,
동료들과 축하 파티를 하던 중
3층에서 떨어져 척추신경을 다친 후 이런 상태가 되었다는 거예요.
술에 취해서 숙소에 돌아왔는데
밖에서 동료들이 다시 부르는 소리에 밖으로 나간다는 것이
창문을 열고 나간 것이요.

문제는, 그가 몸의 신경은 다 죽었어도,
머리는 온전히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말도 하지 못하고 눈도 돌리지 못하지만
생각과 사고는 그대로 살아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동생을 보고 있노라면 늘 울고 있다는 겁니다.
저는 그 장면이 정말 끔찍했어요.
만약 내가 모든 생각과 느낌을 다 가지고 있는데
내가 뜻하는 대로 몸이 움직이지 않고,
내가 생각하는 대로 말하지 못한다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어쩌면 차라리 의식이 없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분에 대해 간절히 기도하고 집에 돌아왔는데요.
한동안 그분에 대한 생각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그분에 대한 기도이기도 하지만
제 안에 주어진 여러 생각이 교차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분은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고,
저는 장례에도 참석했습니다.
사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결론이 났지만
사정을 다 아는 저는 자살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어요.
왜냐하면 그분은 자신의 힘으로 물 한 모금 먹을 수 없었기 때문이죠.
그 생각에 미치자 더욱 제 마음을 복잡하고 괴로웠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 모습이 제 모습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우리는 재능들을 원합니다.
누구보다 뛰어난 머리를 갖고 싶고,
많은 재주가 있기를 바라죠.
그런데 그 재능이 내게 있어도 내가 발휘하지 못한다면,
나에게 뛰어난 재주가 있어도 쓰지 못한다면 어떨까 싶었어요.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격언이 있죠.
나에게 주어진 복을 누리지 못한다면,
나에게 허락된 은혜를 느끼지 못한다면,
나에게 맡겨진 사명을 행동하지 못한다면,
그 복과 은혜, 허락된 사명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오늘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겠다.”
우리가 주님의 백성으로, 주님이 나의 하나님으로,
나는 주님의 자녀가 되고, 주님은 나의 아버지가 되어 주시겠다는 약속,
이 약속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 되시는 것이니까요.
자식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줄 아버지가 없듯이,
나의 아버지는 전능하신 하나님, 바로 그분이 되어 주시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그분이 나의 아버지셔도,
내가 그분을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면 어떨까요?
내가 그분을 아버지로 인정하지 않는다면요.

방금 전 언급한 오늘 본문은 조건절이 붙어 있습니다.
“나에게 순종하고, 내가 명하는 모든 것을 실천하면”이 그 조건절이죠.
이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불러야 아버지가 되고,
이는 그분이 모든 일의 주관자이심을 믿어야 나의 하나님 되신다는 것입니다.

믿고 기다려야 그날은 오고요.
믿고 참아야 이깁니다.
믿고 붙잡아야 현실이 되고요.
믿고 행동해야 성장합니다.
아무리 많은 것이 보장되어도,
아무리 많은 것이 약속되어도,
그 약속을 믿지 못하면,
그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면,
그 약속은 현실이 되지 못합니다.

작은 것이라도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것이 나의 것이 됩니다.
사소해도 말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것이 나의 인격이 되고요.
미천해도 행동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것이 나의 신앙이 돼요.
그렇게 약속은 조금씩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순종은 구슬입니다.
하나씩 꿰어야 보배가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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