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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예레미야묵상

예레미야묵상20-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우십니다. 예레미야 7: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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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단단히 화가 나셨습니다.
그리고 예레미야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죠.
나한테 기도하지 ! 들어 거야!”

장면이 심각한 장면인데요.
기도에 응답하지 않겠다는 말씀이니까요.
그런데 대목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원리 같은 것이 보입니다.

하나는, 예레미야는 중보기도를 했다는 점이죠.
그의 직분은 마치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의 중재자 같습니다.
매일 하나님께 그들의 연약함을 기도했던 같아요.
여기서 우리 그리스도인의 직무 같은 것이 엿보입니다.
예수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보자셨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도 하나님과 세상 사이의 중보자라고 말이죠.

우리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심판자가 아닙니다.
세상의 죄악을 까발리고, 고발하고,
심지어 심판까지 하는 권력이 그리스도인의 직무가 아니에요.
진짜 우리의 직무는,
세상을 변호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기대하며
끊임없이 용서와 구원을 기도하는 중보기도자입니다.
그것을 마디로이웃사랑이라고 하죠.

가지 있습니다.
중보기도에 하나님은 응답하셨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시는데요.
이야기는 그동안에는 용서와 긍휼을 베푸셨고,
예레미야와 같은 그리스도인의 중보에 응답해 오셨다는 이야기가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보시고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시죠.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보시고
세상에 대한 심판을 미루기도 하십니다.
의인 명만 있어도 은혜의 손길을 거두지 않으시고,
깨어 있는 자들의 수고를 보시고 긍휼을 베푸시죠.

점에서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역할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어떤 것인지 읽을 있습니다.

그런데
중보기도가 오늘은 통하지 않습니다.
원리가 깨졌어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그럴까요?
우리가 중보기도 해도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최근에 감사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주변에 아프고, 심각한 병들에 고생하는 분들이 생겨,
마음 졸이며 기도할 때는 힘들었는데요.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좋은 응답들을 주셨습니다.
물론 아직 안심하고 기도를 접을 때는 아니지만
은혜를 주셔서 모두들 조금씩 안정을 찾고 계시죠.

그래서 제가 인사를 많이 받았습니다.
기도는 여러분들이 하셨는데, 인사는 제가 받아 죄송해요.^^
인사 가운데는 기도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것과 동시에,
모두의 기도 때문에 좋은 결과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어요.
그런데 저는
기도에 대해 감사해하시는 것은 동의합니다.
우리 모두 진심으로 기도했으니까요.
그러나 우리의 기도 때문에 좋은 결과가 있었다는 데는
동의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이렇게 말씀드렸어요.
우리 때문이 아니라 당사자의 믿음 때문에 은혜가 주어진 거예요.”

많은 분들이 중보기도를 부탁합니다.
목사에게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죠.
그런데 기도의 응답이 되는 것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이 있어요.
목사인 저는 모든 부탁에 기도합니다.
여러분이 요청하는 기도는 모두 합니다.
심지어 요청하지 않은 기도에 대해서도 기도합니다.
그런데 어떤 것은 응답이 되고, 어떤 것은 그렇지 않을 때가 있어요.
참고로, 응답이 있고 없고를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하나님은 모든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다만 긍정으로도 응답하시고, 부정으로도 응답하시기에
우리에게는 응답이 있고 없고로 나타날 뿐이죠.

아무튼 결과는 그렇게 2가지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주권이 일차적 원인이 있을 거예요.
응답의 결정은 하나님이 하시니까요.
그래서 결정에 대해 순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우리의 만족과 상관없이최선이기 때문이죠.
그분은 나를 나보다 아시는 분이니까요.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차적인 하나님 주권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있어요.
그것이 바로 기도의 주체가 되는 당사자의 믿음입니다.
어떤 이들은 제게 기도 부탁을 놓고
무엇을 부탁했는지조차 모를 때가 있습니다.
모르는지 아세요?
쓸데없는 부탁을 것이 아니라 분명히 필요한 부탁을 했을 거예요.
그럼에도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은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기도인데 부탁만 하고 정작 자신은 기도하지 않는 거죠.
신의 기도인데 중보는 요청하면서 자신은 믿지 않는 거예요.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을 빗대 말하자면,
자신들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은혜를 위해 중보기도를 요청합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들은 구원받는 자처럼 살지 않아요.
자신들이 진정한 예배자로 세워지고,
하나님 말씀 깨닫는 지혜자가 되길 원하고,
좋은 아빠, 좋은 부모,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 땅에서
귀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게 달라고 기도요청을 하고는,
정작 자신은 주일 성수 하는 수고도,
말씀을 매일 묵상하는 간절함도,
자신을 가꾸고 영적인 분위기와 감정을 만들어
가족과 사회에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노력은 조금도 하지 않죠.
그러고 기도는 부탁해요.
오늘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많은 분이 여러분을 위해 기도합니다.
많은 이들이 여러분을 기도로 도와요.
우리 교회 많은 분이 교회 가족들을 위해 매일 기도하죠.
제가 알아요.
그래서 감사하고 기쁘고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게 기도하고 중보해도
기도의 주인공은 바로입니다.
내가 믿지 않고, 내가 수고하지 않고, 내가 온전히 서지 않으면,
어떤 기도도 응답받지 못합니다.

기도는 말이 아니라 삶입니다.
기도한 데로, 기도의 바람대로 내가 아야 이루어지는 것이 기도예요.
살려달라고 기도하셨어요?
그럼 오늘을 힘차게 사세요.
그렇게 기도하고는 마냥 울고만 있지 마시고요.
나를 건강하게 달라고 기도하셨습니까?
그럼 믿고 씩씩하게 일어나세요.
좌절하지 말고, 먹고, 운동하고, 힘차게 움직이세요.
부자가 되게 달라고 기도하셨어요?
그럼 오늘부터 성실하게 일하세요.
가족의 행복을 위해 기도하셨어요?
그럼 오늘부터 성질을 죽이세요.
그렇게 기도를 삶으로 만드세요.

'Heaven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
하늘은 스스로 노력하는 자를 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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